Chapter 1

9R 스프링 드라이브 초침과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의 아름다움

스프링 드라이브는 시간의 본질을 반영하는 독자적인 일본 미학이 깃든 시계 기술입니다. 나가노현의 세이코 엡손 시설 내에 위치한 신슈 워치 스튜디오에서 제작되며, 기계식 시계처럼 메인 스프링을 동원력으로 사용하면서도, 집적 회로(IC)와 쿼츠 오실레이터를 통해 전자식 시계 수준의 정밀함을 유지합니다. 기계식과 전자식 시계 기술이 조화를 이룬 이 독창적인 진보는, 각 기술의 최고의 장점만을 선택하고 융합하려는 집념과 장인정신이 만나 이뤄낸 결과입니다. 이는 오직 두 분야에 모두 정통한 기술력과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계 제작의 희귀한 진화라 할 수 있습니다.

스프링 드라이브의 이야기는 1977년, 스와 세이코샤(현 세이코 엡손) 소속의 젊은 엔지니어 아카하네 요시카즈의 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이상은, 전자 시계의 정밀도와 메인스프링에서 비롯된 동력을 결합한 이상적인 시계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0년이 넘는 개발 끝에, 그 꿈은 1999년 최초의 상용 스프링 드라이브 무브먼트를 통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이 플랫폼이 한층 진화하며 자동 감기 기능과 3일간의 파워리저브를 갖춘 첫 그랜드 세이코 스프링 드라이브가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2024년, 그랜드세이코는 9R 무브먼트 시리즈 탄생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이 상징적인 무브먼트는 자연스럽고 조용하며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의 본질을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게 반영하며, 인류가 시간의 개념을 처음 떠올렸던 천체의 움직임을 연상케 합니다.

시적이면서도 기술적이고, 수공예적이면서도 첨단이며, 강력한 에너지를 지니면서도 그 사용에 있어 효율적인 스프링 드라이브는, 이러한 모순처럼 보이는 조화를 통해 전 세계 시계 애호가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아왔습니다. 스프링 드라이브는 메인스프링이 구동하는 기계식 시계의 향수 어린 매력과 감성, 그리고 배터리로 구동되는 현대 전자시계의 정말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스프링 드라이브 시계의 시그니처는 단연, 초침이 매끄럽게 미끄러지듯 흐르는 움직임입니다. 이는 기계식 시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틱'소리나 미세한 떨림 없이 다이얼을 유유히 가로지릅니다. 그 이유는 스프링 드라이브의 모든 부품이 지구 자전처럼 끊김없이 부드럽게 회전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스프링 드라이브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기존 시계 기술의 한계를 초월하며 자연스러운 시가느이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 기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영원히 이어지는 시간의 조용한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이 초침의 움직임은, 오늘날 그랜드 세이코의 상징이자 브랜드의 철학인 "시간의 본질(The Nature of Time)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스프링 드라이브 초침의 유려한 움직임의 핵심은 바로 트라이-싱크로 레귤레이터(Tri-Synchro Regulator)에 있습니다. 이 장치는 9R 무브먼트에서 시간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일반적인 기계식 시계는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Club tooth escapement)를 사용하여 락킹과 언락킹 동작을 반복하며 '틱' 소리를 내지만, 트라이-싱크로 레귤레이터는 메인스프링에서 생성된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를 바탕으로 기어트레인의 끝단에 위치한 글라이드 휠(glide wheel)에 무음 전자기 브레이크를 작동시킵니다. 이 장치는 기계 에너지,전기 에너지, 전자기 에너지라는 세 가지 에너지를 동시에 활용하기 때문에 Tri-Synchro(세 가지 동기화)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전통적인 이스케이프먼트의 미세한 충돌을 제거함으로써, 스프링 드라이브는 부드럽고 조용한 초침의 흐름을 실현할 수 있었으며, 일부 모델에서는 일오차±0.5초, 일반적인 모델에서도 ±1초의 높은 정밀도를 자랑합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향한 추구는 그랜드세이코, 특히 신슈 워치 스튜디오에서 탄생한 시계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핵심 테마입니다. 그중 이러한 정신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모델 중 하나는 바로 SBGA211, 일명 "스노우플레이크(Snowflake)"입니다. 눈처럼 순백의 다이얼은 매년 수개월간 설경으로 뒤덮이는 신슈 호타카 산맥을 연상시키며, 착용자에게 자연의 평온함을 전합니다. 이 시계는 20년 전 최초의 그랜드세이코 스프링 드라이브 무브먼트인 칼리버 9R65로 구동되며, 담청색으로 열처리된 초침은 눈 내리는 듯한 조용하고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시간의 흐름을 그려냅니다.

고요함, 정밀함, 그리고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과의 조화-지난 20년간 9R 무브먼트 패밀리를 정의해온 가치들입니다. 모든 스프링 드라이브 시계에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표현하고자 했던 세대에 걸친 엔지니어들의 꿈이 담겨 있습니다. 그 결과물인 부드럽게 흐르는 초침은 일본이 바라보는 시간, 즉 끊김 없이 이어이는 흐름으로서의 시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이처럼 스프링드라이브는 그랜드세이코가 "시간의 본질(The Nature of Time)"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